손헌수의 활력의 샘물
경제학에서 저축은 ‘미래소비’로 정의된다. 현재의 소비를 줄여 미래의 소비 여력을 확보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소비와 미래소비는 서로 보완적인 개념이며, 소득은 이 둘의 합으로 구성된다. 예컨대 월소득이 100인 사람이 80을 소비하고 20을 저축한다면, 그의 현재소비는 80, 미래소비는 20이 되고, 저축률은 20%가 된다. 2025년 1분기 기준, 미국의 평균 가계 저축률은 약 4.6%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다시 말해 100을 벌면 95.4를 소비하고, 4.6만 저축한다는 뜻이다. 최근 경기 침체와 부동산 시장 위축이 이어지는 가운데, 저축 여력이 부족한 가계는 소비를 줄이게 된다. 그러나 소비가 줄어들면 기업의 매출이 감소하고, 생산도 위축되며, 결국 경기 하강이라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일반적으로 저축과 절약은 바람직한 경제 습관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인플레이션 환경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현재 2만 달러인 자동차를 구매하지 않고 5년 후를 기약하며 저축한다면,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해당 차량의 가격은 4만 달러까지 상승할 수 있다. 이 경우, 5년 후의 2만 달러는 물가 상승률을 이기지 못하고 구매력을 절반으로 하락시킨다. 은행 이자가 일부 손실을 보전할 수 있겠지만, 일반적인 저축 수단으로는 인플레이션을 초과하는 수익을 얻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 반면, 지금 2만 달러로 자동차를 구매한 사람은 상황이 다르다. 중고차 가격 역시 인플레이션의 영향을 받아 상승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5년 뒤 해당 차량을 다시 2만 달러에 팔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기대가 확산되면, 사람들은 저축보다 소비를 선택하게 되고, 저축 기피 현상이 나타난다. 결국 물가 상승과 저축은 상반된 경향을 가지게 된다. 물가 상승이 없는 상황에서도 저축은 문제가 될 수 있다. 개인이 소비를 줄이면, 기업의 판매량은 감소하고, 생산은 축소되며, 고용도 줄어든다. 실직은 소득 감소로 이어지고, 다시 소비를 위축시켜 경기침체를 가속화한다. 이처럼 개인에게 미덕인 절약이 전체 경제에는 해악이 되는 경우를 ‘절약의 역설(paradox of thrift)’이라 부른다. 착한 선택’이 항상 ‘좋은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저축은 개인 재정에 있어 중요한 덕목이지만, 그것이 항상 경제 전체에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처럼 경제 구조와 시장 환경이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는, 전통적인 가치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상황에 맞는 경제 감각이다. 미국처럼 현재소비 성향이 강한 나라는 절약의 역설로 인한 소비 위축에 대한 걱정은 상대적으로 적지만, 반대로 저축이 부족해 경기 침체 시 회복력과 대응력이 떨어진다는 약점이 있다. 경기는 언제나 호황일 수 없으며, 결국 중요한 것은 불황을 견딜 수 있는 체력이다. 경제적 체력은 단순한 저축뿐 아니라, 혁신, 자기계발, 생산성 향상 같은 능동적 전략에서 나온다. 특히 최근 미국의 관세 정책 변화로 촉발된 글로벌 공급망의 불안정성과 지정학적 리스크는 세계 경제에 커다란 충격을 주고 있으며, 이런 불확실성의 시대에는 더욱 민첩하고 체계적인 대응이 요구된다. (변호사, 공인회계사) 손헌수손헌수 활력 현재소비 성향 소비 위축 저축 수단